붕괴된 시간의 노래
The moment of collapse
바라다 보는 모든 것들은 순간을 기록한 사진 처럼 멈춰있다. 멈춰있는 시공간에 서 있는 듯했지만 어디에선가 불어온 바람과 바람이 전해준 소리를 듣고서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낡아 떨어져가는 비닐의 끝자락을 흔들고 가서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소 두려운 마음으로 마주한 이곳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린 공간이었다. 오래전 기억은 흐릿하다. 미래를 그려낸 청사진은 우스운 분노로 남았다. 그렇게 멈춰 선 공간의 시간은 붕괴되어 있었다. <붕괴된 시점>은 멈춰 선 공간이 들려주는 거북한 예측이다. 우리 모두를 쓰러트릴지도 모를 붕괴를 암시하는 풍경 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전부다,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암시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제주를 살고 있다. 떠나보지 않고 살아온, (아마도) 평생을 살아가게 될 나에게 제주는 직시할 수밖에 없는, 그래야만 하는 대상이다. 최근 10여년은 그 이전의 10년 보다 빠른 변화를 겪었다. 급변하는 제주를 바라보기가 버거웠다. 쉽게 다가설 수 없었다. 애써 시선을 피해야 했다.
제주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된 것은 카메라를 들고 제주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환경단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대 후반부터였다. 한라산에 설치하려던 케이블카, 마을목장과 곶자왈을 걷어내고 건설되는 골프장, 화순항에서 위미항을 거쳐 강정앞 바다에 건설을 강행한 제주해군기지, 그리고 이어지는 제2공항(제주신공항)건설 등등. 무수히 많은 개발 반대의 현장을 카메라를 들고 지켜보거나 카메라를 내려놓고 함께했다. 개발 반대로 잠시 중단한 사업은 있지만 포기한 사업은 없다. 결국 들어설 것은 들어섰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한 절규는 결국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다.
제주사람들의 저항은 '태ㅅ,ㄴ땅‘ 제주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몸부림은 수십년, 아니 수백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탯줄을 태워 묻은 땅, ‘태ㅅ,ㄴ땅’에 뿌리를 내린 ‘제주껏’들의 저항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 이었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저항은 거대한 힘에 항상 가로막혔다. 저항을 짓밟고 들어선 개발은 공동체 파괴로 이어졌다. 공동체 파괴는 지역 정채성의 말살로, 말살은 기억의 학살로 이어졌다. 지금, 여기에서의 개발은 본래의 기억을 지워낸다. 그리고 지워낸 자리에 심어놓은 것이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다.
화려한 청사진이었다. 세계화를 얘기했다. 침체된 지역 경제를 구제해줄 발전 방안이라고 했다. 경제는 좋았던 적이 없다. 항상 좋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 새로운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개발에 대한 구호는 언제나 화려했다. 화려한 구호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었다. 개발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온갖 감언이설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의심하고 동조하지 않으면 낙인을 찍었다. 개발 사업의 내용과 규모는 다르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늘 그랬다. 그렇게 분란을 만들고 이간질 시키며 마을을 쪼개놓았다. 그렇게 마을목장이 사라졌고 숨골이 막혔다. 경관은 사유화되었다. 개발의 이익은 제주를 떠나 배부른 자들의 배를 더 불렸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환상은 배관 파이프 끝에 씌어진 푸른 비닐이었다.
환상은 꽤 오래 멈춰있었다. 붕괴되어 버린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들려온 것은 붕괴된 시간이 들려주는 레퀴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