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럭이고 있다.
하이얀 만장이 한 줄기
스산한 구름 가득한 하늘을 휘져으며 울리고 있다.
펄럭이는 몸을 비틀고서는
중천을 팽팽 치달으며
쥐어짜내는 목소리 다하도록 몸부림치고 있다.
비틀렸다가는 치켜 오르고
휘어졌는가 하면 넘실대며
펄럭이고 있다.
부딪히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슬픔과 분노의 욱신거림을
……
- 김시종의 시 『흐트러지면 펄럭이는』 중에서
바닷가 산책을 나섰던 일요일의 이른 아침. 맑아져 오는 하늘, 떠오른 구름에 연붉은 빛이 비치고 있었다. 애써 만든 여유를 오랜만에 만끽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 여유를 부리던 시간에 메시지 알림을 받았다. 그리고 서둘러 포털의 뉴스를 드려다 봐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조잘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져 갈 즘. 머릿속은 강한 빛에 충격을 받을 때처럼 하얘져버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다시 들여다봐야만 했다.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뉴스였다. 뉴스가 전하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애도하라고 했다. 그런데 애도에는 연유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간 이들에게 최소한의 이유는 알게 해야 되지 않나. 단지 그 시간, 그 거리에 있었다고 해서 목숨을 잃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 원통한 죽음이 가려지고 있다면 이 땅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도로에 남겨진 꽃이 시간이 지나도 꽃으로만 남아 있다면 애도는 그저 남겨진 무더기의 썩어가는 꽃일 뿐이다. 권력이 정한 애도기간은 이제 끝나간다.
암담하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던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아직은 우리 아이들에게 뭐라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4.16이 그랬던 것처럼 10.29도 비수로 가슴에 새겨 넣을 것이다. 그리고 연유가 밝혀지고 이 땅이 정의로운 국가가 될 때에 먼 길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 것이다.
“장대에 단 무명의 깃발 하나. 불어오는 찬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