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막은 섬-보목_2020 / ⓒ2022. 양동규
홍초(칸나)꽃이 피어 있다. 두껍게 겹쳐진 구름이 점점 거세지는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섬에서 떨어져 있는 섬은 붉게 물들어 간다. 한여름에 피었던 홍초도 절정을 넘겨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와 깨지며 하얀 포말을 해안으로 올려 보내다가 이내 사라진다.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제주도 어촌 마을 포구의 풍경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초록 초록한 홍초 잎과 넝쿨과는 다른, 이미 말라 썩어가는 풀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누워있다. 홍초에 둘러싸여 있는 바위도 낯설다. 검게 내려앉아 있는 돌담과는 다르게 생채기가 남아있는 바위는 주변과 어우러지지 않는다. 어릴 적 가끔 파도를 보러 갔던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다르다. 있을 법한 풍경이면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제주도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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