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이왓-조_2023 ⓒ2022. 양동규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가 지났고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를 맞았다. 역대급 태풍이라는 예보에 잔뜩 긴장하며 지샌 밤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른 아침에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은 쌀쌀하면서도 상쾌하게 얇은 여름 셔츠를 파고들었다. 남겨진 바람은 많이 아쉬운 듯 여물어 가는 조코고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대며 떠나갔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두어 번의 태풍이 또 올 수도 있다. 세찬 빗줄기와 함께 불어닥치는 바람이 또다시 조코고리를 정신없이 흔들어 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여기는 ‘춤을 추는 어린이의 모습을 닮았다’는 무동이왓이다. 본래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잃어버리기 전에는 동네 아이들이 참새마냥 이 집 저 집, 이 나무 저 나무, 이 동산 저 동산을 춤추든 몰려다녔을 곳이다. 잃어버리기 전에도 참새들이 여문 조를 쪼아 먹으려고 조잘거리며 이리저리 몰려다녔을 곳이다.
그 아이들이 할망이 되고 하르방이 되어서 다시 돌아와 함께 키워낸 조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모다진 조를 솎아내며 한여름을 보낸 조다. 자빠진 조는 일으켜 세우면 된다. 불어오는 바람은 서로 의지해서 버텨내면 된다. 그렇게 해도 떨어진 조는 참새 직시로 남겨두면 된다. 그리고 함께 추석을 보내고 가을을 맞으면 된다. 그러면 함께 나누어 먹을 조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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