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한 만남이었다. 제주도 북서쪽 해안에는 오래된 선인장 군락이 있다. 천년초(자단선선인장), 백년초(보검선인장)라 부른다. 열매는 식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초여름에 피는 꽃은 밝은 노란 빛이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은 솟아난 가시와는 다르게 탐스럽다. 맥시코에서 쿠로시오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왔다고 한다. 제주에 터를 잡은 지는 20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제주로 이주해온 귀화식물이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만난 선인장은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솟아오른 가시는 날카롭다. 몇 번 찔려본 기억이 있어 다가서기가 두렵다. 밭에서 키우는 선인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가시를 솟구어낸 줄기는 거칠다. 주름이 깊게 잡혀있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다. 제주라는 척박한 토양에서 버텨냈던 그간의 시간이 드러난다.
선인장을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노랗게 피어난 백년초 꽃을 보면 더 그렇다. 선인장 마을로 많이 알려져 있는 월령리에 살다가 돌아가신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의 얼굴이다.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고, 할머니가 살았던 터를 기록하면서, 할머니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다 떠오는 것은 할머니가 오랜 시간 바라봤을 선인장이었다.
이제 곧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가 별세한지 18주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맘때, 여름이 지나가면서 뿌리는 비가 내릴 즘 월령리 바닷가에서 할머니를 기리는 문화재가 매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