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평안_18, 2018 / ⓒ2022. 양동규
멈춰 선 시간이다. 찬바람이 불던 겨울은 한참 전에 지나갔다. 햇살은 뜨겁다. 햇살이 비치지 못하는 그늘은 서늘하다. 이제 곧 여름이다. 텅 빈 방에는 작은 옷걸이 몇 개가 붙어있다. 그중 하나의 옷걸이에 걸려있는 겨우내 쓰고 지냈던 모자 하나. 
방에 앉아있던 모자의 주인이 손님을 맞는다. 손님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찾아온 낯선 이들이다. 반가움과 부끄러움, 불안함 같은 것들이 깊은 주름과 함께 주인의 얼굴에 새겨진다. 주인은 살아온 이야기를 전한다. 깊게 파인 주름은 다양한 기억을 새기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오래전 이야기다. 이미 지워졌을 이야기다. 지워냈을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어렸을 때 겪었던 당신의 이야기를 손님에게 전한다. 10대 소녀의 이야기다. 10대 소녀는 예뻤다. 오빠들이 예뻐했다. 산으로 숨어야 했다. 추운 겨울을 산에서 보냈다. 오빠들은 그때 다 떠났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힘들었던 기억은 애써 지워냈다. 예뻤던 소녀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방에 앉아있는 노인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노인은 노인의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며 스스로를 가둬 둔 방에 앉아있는 노인의 표정은 평안하다. 스스로를 고립시켜버린 노인은 10대 소녀의 당신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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