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로는 무등산 숲길을 돌아 금남로로 이어진다. 봄의 정점으로 접어든 오월의 무등산 숲길에는 한량없는 햇볕이 드리워져있다. 갓 피어난 생명이 빚어낸 오월의 숲은 아름답다. 금남로의 끝 또는 시작 지점에 위치한 분수광장은 어수선하게 분주하다. 내일은 5월 18일이다.
#2. 5년 전, 망월동5.18묘역을 찾았다. 5.18 기념식이 끝난 후였다. 햇살은 찬란했다. 기념식은 숙소에서 방송으로 봤다. 국가행사를 방송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전날의 숙취가 남아있었다. 느리게 흐르는 구름처럼 묘역을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묘소 앞에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사진 액자는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래어져있었다. 묘역을 나와 구멍가게에서 생수 한통을 사서 단숨에 들이켰다.
#3. 15년 전, 박홍수 5월의 빛 사무국장의 안내로 5.18유적지를 둘러봤다. 한반도 평화순례를 떠난지 이틀째가 되는 날이었다. “당시 군부는 ‘광주 시민들은 모두 다 빨갱이다. 보이는 족족 잡아 가둬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박홍수 사무국장의 설명이었다. 군홧발에 짓밟힌 태극기와 함께 계엄군이 쏜 탄두가 전남대학교 5.18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었다. 망월동5.18묘역에는 많은 이들의 영정사진들이 남아있었다. 바래어져가는 사진이었다. 정태춘의 노래 ‘5.18’을 배경음악으로 평화순례 광주지역 영상을 만들었다.
#4. 아마도 30여 년 전, 처음 비행기를 탔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외삼촌의 대학원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늦은 저녁 광주공항에 내리려는데 비행기 창문을 닫으라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때는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지금은 문을 닫으면 혼난다.
#5. 누군가의 몸에 박혀있던 탄두가 있다. 누군가를 위해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받은 훈장이 있다. 70여 년 전에 몸속에 박혔던 탄두는 박물관 수장고에 있다. 탄두 옆에는 누군가가 기증한 훈장이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탄두는 왜 그곳을 향해야 했을까? 훈장은 탄두의 방향을 정해준 자들이 내려준 것인가? 탄두는 광주 전남도청에도, 전일빌딩에도, 제주도 한라산에도 그 흔적을 남겨두었다.
#6. 정태춘의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을 봤다. ‘5.18’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올해 5.18에는 광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5.18_정태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