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1, 2020 / ⓒ2022. 양동규 
4.16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둔 새해 첫날이었다.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완도를 거쳐 팽목항으로 향했다. 한겨울이지만 그렇게 춥지 않은 날이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깃발은 바람과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의 끝은 바람을 타고 떨어져 나간 실들의 부재로 흐트러져 펄럭이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적했다. 그리고 쓸쓸했다. 아이와 함께 포구 끝에 있는 등대로 향했다. 수많은 리본과 함께 적혀있는 메시를 훑어보았다. 아직 어린아이는 말이 없었다.
여기까지 가는데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나 싶었다. 좀 더 빨리 찾아가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무거워 쉽게 갈 수 없었다.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대한 배를 생방송으로 지켜봐야만 했었다. 그 배에는 내가 사는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뉴스 보도, 엄마들의 표정, 검은 바다의 불빛 들을 보며 떠오른 아이의 얼굴. 내 아이가 저기에 있었다면 나는... 내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400여 톤의 철근이 세월호에 실려 제주해군기지 건설 현장으로 가고 있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과적에 있다고 했다. 과적의 원인은 기지로 향하던 철근이었다.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요구에 응한 무리한 출항이었다고 했다. 철근의 무게와 함께 잠겨버린 피어보지 못한 어린 생명. 침몰의 현장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면서도 구하지 못한 무능함. 분노로 가슴을 치며 통곡해야만 했다.
팽목항에서 목포신항으로 향했다. 세월호는 육지로 올라와 누워있었다. 아이에게 얘기했다. 어린 누나, 형들을 태우고 가던 배였다고. 아이가 너무 어렸을 때 배가 바다에 빠졌다고. 배가 바다에 빠졌다. 배는 바다에 빠지면 안 되는 거였다. 아이에게 배는 바다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6년의 시간과 함께 자란 아이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했다.
다시 2년이 지났다. 내일이면 4.16세월호 참사 8주기다. 목포항에 누워있던 세월호를 기억하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기억한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배웠다고 했다. 어떻게 배웠는지 물었다. 선장이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해놓고 도망가서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은 선장 때문이란다.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8년이 지난 이제는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또 함께 기억하기 위해 얘기를 나눴다.
4월이다. ‘4월은 갈아엎는 달, 일어서는 달’이면서 ‘잔인한 달’이었다. 그렇게 4월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세월 2, 2020 / ⓒ2022. 양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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