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무꽃이 피었다. 이 꽃을 처음 봤을 때 뭔가 특별한 이름이 있는 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무꽃이었다. 무심한 듯 피었다 지는 무꽃.
돌무더기가 있다. 아마도 밭을 일구다 모아 놓은 듯하다. 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무꽃에 둘러싸여 있는 돌무더기 한 컷. 그리고 무심히 찍은 사진을 기억 속 깊은 곳에 남겨두고 잊어버렸다.
70여 년 전에 누군가가 찍어 놓은 흑백 사진 한 컷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죽어간 자들의 여러 컷 들 사이에 섞여 있는 죽어간 자의 사진이다. 그리고 떠오른 무꽃에 둘러싸여 있는 돌무더기 사진 한 컷.
70여 년 전, 저 돌무더기 위에 동백꽃 떨어져 사그라지듯 죽음을 맞이한 이는 공비, 산폭도, 빨갱이, 산부대, 무장대, 유격대라고 불리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어떻게 불리든 간에 이들은 토벌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먼저 꿈을 꾸었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자주독립, 통일된 정부를 염원’했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한 이들, 그러나 기억되지 않는 이들, 기억에서 지워내야만 했던 이들, 시신조차 사라져버린, 비석조차 세우지 못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따스한 봄날, 길을 걷다 무심한 듯 피어있는 무꽃을 보면 생각나는 오래전 흑백 사진 한 컷은 그렇게 기억에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