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하늘, 궤-땅, 2021 / ⓒ2022. 양동규 
까마득한 어둠이다. 그 깊이는 가늠하기 힘들다. 
들고 있는 스마트폰 빛에 의지해 들어간다. 한 걸음을 내딛기도 힘들다. 발걸음이 아니라 한손을 짚고 기는 걸음으로 간다. 앞서 가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솟아내려온 종유석에 대맹이를 몇 번 들이박고 나서는 몸뚱이가 바닥에 달라붙는다. 얼마나 갔는지 흘렀는지 모른다. 가늠하기 힘든 시공간이다. 좁디좁았던 뱀 굴 같은 터널을 벗어나자 허리를 필 수 있는 높이가 나온다. 좀 더 들어가니 두 다리를 쭉 피게 됐다. 빛을 비쳐보니 어렴풋하게 반대편 용암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불을 껐다. 말 그대로 암흑이다. 한 치 앞에 내 손을 갔다 대어도 보이지 않는다. 익숙해져있는 육신의 공간감각으로만 손의 위치를 가늠할 뿐이다. 사진 암실의 암흑 그 이상의 암흑을 경험한다.
생경한 암흑에서 마주한 것은 있어도 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오로지 나의 육신의 감각으로만 나를 인지할 뿐. 숨소리조차 휩쓸려가버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주는 무게의 공포를 느낀다. 
다시 빛을 비춘다. 함께 한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눈물이 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이 너무 그리웠나 보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 나의 표정을 가늠한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몇 군데의 궤를 몇 번 더 들어갔다. 처음 느꼈던 암흑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익숙해질 뿐이었다.
70여 년 전,
이 궤에 발을 디뎠던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궤에서 그들이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 궤에서 나갔을 때 바라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다시 또 다른 궤를 찾았다. 어둠에 막혀있는 궤였다. 이 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파릇한 새 순이 돋아나는 봄날이었다. 이 궤에서 나오려고 하늘을 봤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궤에서 끝내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굴은 닫혔다. 꿈은 그렇게 봉인되었다. 시공간조차 가늠하기 힘든 깊은 암흑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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