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여름과 겨울의 날씨는 한라산을 경계로 산북과 산남이 확연하게 다르다. 그날도 그랬다. 산북의 하늘은 어두운 구름이 내리 깔려 꽤나 굵은 눈발이 지난밤부터 휘갈겨졌던 날이었다. 그런데 제주 시내를 벗어나 남조를 타고 산남에 들어서니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남조로는 나름 추억이 많은 길이다. 그 길의 끝에 닿은 바다가 있다. 그 바다도 몇 컷의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었다.
갯가에 차를 대고 바닷내를 한껏 들이마셔 본다. 그러고는 아이와 함께 구럼비낭(까마귀쪽나무) 사이를 지나 해안 암벽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 들국화였다. 눈 보다 먼저 나의 몸이 반응한 것은 들국화의 짙은 향기였다. 아이에게 들국화를 꺾어 차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으나 별 관심이 없었다.
들국화에서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바위를 넘으며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는 바다를 좋아한다.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검은 현무암 바위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쓰레기들이 보였다.
바다 쓰레기를 처음 접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이 바다는 눈보라를 뚫고 달려와 부드럽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아이와 함께 처음 마주한 곳이다. 그리고 내게는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바다다. 그런 바다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고 잠시 당황했다.
해양 쓰레기 문제는 뉴스에서도 보았고 다큐멘터리영화도 찾아서 봤었다. 가끔 아이와 해안을 산책하다가 밀려온 쓰레기를 보기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이날은 다르게 다가왔다. 겨울 햇살과 아이, 기분 나쁘지 않았던 기억의 향수 같은 것들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이날은 아이와 함께 ‘바다 쓰레기 줍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날이었다.
오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11주년이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