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낙화 / 2021 / ⓒ2022. 양동규
정방낙화(正方落花)
주상절리 절벽에 거센 바람이 부딪친다. 한라산 남쪽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은 절벽을 타고 바다로 떨어지다 바람을 만난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은 떨어지는 물을 흐트러트린다. 흐트러져 흩날리던 물방울은 다시 바람을 타고 바다로 향한다. 
햇빛은 구름에 살짝 가려져있어 한낮의 빛이 은은하다. 봄부터 불어오던 열기는 한여름에 정점을 찍더니 어느새 식어간다. 이제 태풍이 한두 번 더 불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겨울이 오겠지.
그래도 아직 괜찮다. 바람에 흩어지는 물방울이 온몸을 적셔도 아직 괜찮다. 습해 찝찝한 기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물에 젖은 살에 닿는 바람이 그렇게 차갑지는 않다. 딱 좋은 느낌이다. 촉촉한 상쾌함. 그래, 아직은 괜찮은 거다.
이날은 아이와 함께 찾은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의 나도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학여행으로 친구들과 함께, 좀 더 커서는 데이트를 하러 갔었을 것이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따뜻한 봄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 날 다시 찾았다. 그날은 유난히 따뜻했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었다. 그날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이들의 열명이 폭포의 울림과 함께 따스해진 허공에 흩날렸다. 
250여 명의 죽음. 서귀, 남원, 한남, 위미, 중문, 대정, 안덕, 동광 등등에서 한라산 남쪽의 사면을 따라 흘러드는 폭포수처럼 모다져 맞이했던 죽음. 그해 가을 시작된 죽음의 사슬은 이듬해 봄이 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았다. 그런데 ‘아이야, 이곳은 이러한 연유가 있는 곳이란다.’라고 얘기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얘기할 기회를 갖자고 생각했다. 아직 아이의 눈에는 신비하고 경이롭게 느껴지는 풍경으로 다가가 기억될 테니까. 내가 아이일 때 바라보았던 풍경처럼.
이제,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과 상쾌하게 기분 좋은 물방울의 흩날림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사월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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