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은 전쟁터였단다
노인의 말이다.
팡팡 터지는 게, 전쟁 난 줄 알아서.
수류탄 터지는 것도 아니고, 무신 폭탄 터졈신가 했주.
무서웡이. 그 소리영, 불이영…….
경해도 사람들은 하영 모여십디다.
처음 불타오르는 오름을 멀리서 지켜봤을 때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구럼비 바위가 폭파된 다음 해였다.
이곳은 서부지역 유격대의 근거지였다. 유격대원들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오름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48년 2월 초 미군정은 300여 명의 폭도(유격대)가 애월면의 오름에서 훈련 중인 것으로 보고했다.
아직 이른 봄비가 북동풍을 타고 세차게 내렸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차갑게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면서 조금은 잦아드나 싶더니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불은 붙었다. 어떻게 이 비에 불이 붙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해는 기울어가고 어둑해질 즘 선명하게 구분되는 검은 재를 찾아 올랐다. 화약과 기름 냄새가 신경을 건드렸다. 그 불길에도 타지 못해 남아있던 억새는 불어오는 바람에 떨고 있었다.
이곳은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가 땅을 가렸다’던 ‘목호의 난’ 당시 격전지였다. 당시 전투 목격담을 기록한 하담의 글에 있는 “우리의 동족 아닌 것이 섞여 갑인(甲寅)의 변을 불러들였다”라는 구절도 목호의 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 동족이 아닌 것이 섞여’라는 말을 뒤집어 보면, 실상은 우리 동족 내에서 전투가 진행되었다는 말이 된다.(『제주역사기행』 이영권)
이곳은 새벽하늘의 샛별처럼 외롭게 서있다는 새별오름이다. 오늘날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는 유명한 오름이 됐다.
그리고 오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미사일이 날아오르고 곳곳이 포탄에 불타오르는 영상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