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별세한 문충성 시인의 시 중에 ‘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로 시작하는 시 「제주바다 1」이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라고 했다. 재일교포 김시종 시인은 장편 서사시 「니이가타」에서 ‘바람은 바다의 깊은 한숨으로부터 새어 나온다.’라고 했다.
나는 물 막은 섬에 살면서도 바다가 그리워 바다를 찾는다. 그리움의 대상은 없었다. 그저 그냥 막연한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그 바다는 부모가 아들을 낳으면 ‘야인 내 자식이 아니고 고기밥이라’던 섬의 바다.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던 수많은 섬사람의 목숨이 내던져져 가라앉은 바다였다.
눈보라 치는 겨울바다. 내리는 눈이 아닌 솟구쳐 오르는 눈보라다. 그러다 태풍의 눈에 들어선 것처럼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수분을 잔뜩 먹어 묵직한 눈방울(눈송이)이 바다의 거친 파도에 닿는다. 그럼 그 바다는 한겨울 깊은 한숨에서 나옴직한 하얀 입김을 내뱉는다.
싸움터 같은 풍랑과 한숨에서 새어 나온 입김이 어우러져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고 나면 누군가에게 정신없이 얻어맞은 것 같다. 얼굴은 얼얼하지만 움츠려 있던 감각은 혈관을 타고 터질 듯 팽창한다. 그렇게 겨울 바닷바람과 한바탕 뒤섞이고 나면 무뎌진 감각과 정신이 깨어난다.
‘원래 싸움터였’던 ‘바다의 깊은 한숨’을 잊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그 해 늦은 겨울 눈보라가 솟구치던 바다는 세월호 3주기를 앞둔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