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규의 끝나지 않은 
항쟁과 평화예술
김준기_미술평론가
여기 누군가의 두개골을 관통한 누군가가 쏜 총알과 누군가의 죽음을 딛고 영광을 얻은 누군가의 훈장이 있다. <XX를 위해 세운 공로>(2018)는 훈장과 학살 희생자의 두개골에서 나온 총알을 세 방향에서 찍은 것이다. 제주4.3평화공원 수장고 보관함의 자료 사진 기록 작업 중에 촬영한 것이다. 총알과 훈장이라는 오브제를 통하여 그는 학살과 토벌이라는 양면의 역사적 개념이 양립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물 기록사진을 찍은 양동규가 그것을 작품으로 발표하는 데에는 그의 아픈 개인사가 들어있다. 양동규는 제주4.3 피해자의 손자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남기고 4.3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가 쓴 다음의 글에는 4.3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굴
생전에 볼 수 없는 그대의 모습
殘影(잔영)으로나마 대할 수 있음은
다행으로 여기고
이 첩에 모셔 옛적의 아버님을
그려 보고 있나이다.
비록 음성조차 들을 수 없던 시절에
가신 님에
하늘 나라에서 굽어 살피시고
단 하나 핏줄이 남은 이 자식에게
아버님의 영으로
삶의 열매를…….
양동규의 아버지가 친필로 적어 그의 선친 사진과 함께 앨범에 넣어놓은 글이다. 양동규의 아버지가 적은 이 글이 들어있는 작품 <아버지의 아버님>(2012)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아버지의 손 글씨와 함께 앨범에 끼워놓은 할아버지 사진을 촬영한 컷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 빛바랜 사진에 의존해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영으로 삶의 열매를’ 기원하는 애틋함과 그 속에 담긴 제주 사람의 슬픔이 오롯이 살아있다. 4.3의 희생자로만 알고 있는 할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와 양동규 자신을 합성한 사진<연결된 사슬>(2012)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듯 4.3으로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의 아들로 자란 양동규의 예술은 필연적으로 4.3이라는 항쟁과 학살의 서사를 안고서 출발한다. 
땅으로부터 
양동규 예술의 출발은 ‘학살로서의 4.3’이다. 그것은 땅으로부터 시작한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제주의 땅을 향했다. 묻혀있는 진실을 발굴하는 현장에서 그는 은폐된 진실을 찾아 렌즈를 땅으로 지향했다. 학살터를 찾아 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을 담은 ‘학살현장 유해발굴’ 연작들은 양동규 사진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빈 땅>(2018-21)은 정뜨르비행장 학살유적지에서 유해발굴을 위해 사전 측량한 현장을 찍은 사진이다. 30컷으로 이뤄진 3미터 길이의 대작으로서 측량 후 결과를 얻지 못한 학살터 발굴 현장을 담았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죽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측량 실행 여부를 가르는 선을 그어놓았고 양동규는 선을 포착했다. 기록사진의 재구성이 다큐멘터리 영역을 넘어 개념미술로 이어진 경우이다. 선들을 염두에 두고 찍은 사진들을 사후에 모자이크 처리하여 선들의 만남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풀밭 뒤에는 발굴 후의 ‘빈 땅’을 찍은 사진이 있다. 수십 년 동안 묻혀있던 땅을 걷어내고 은폐된 역사를 드러내는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액자 없이 구겨진 한지를 펴서 자석으로 고정해 놓은 풀밭 사진들 뒤에 빈 땅 사진들을 배치해 지표 아래 감춰진 땅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방식이다. 풀밭 아래 덮여있던 70년의 역사를 발굴하고자 그 세월을 걷어냈을 때, 마침내 드러난 땅에서는 아쉽게도 묻혀있는 희생자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넓은 제주공항 자리 어디에서 매장된 시신들을 발굴 할 수 있을지 두고두고 난망한 과제이다. 이렇듯 발굴하기 쉽지 않은 제주공항의 풀밭과 빈 땅을 작품으로 끌고 들어와야만 하는 이유가 양동규에게는 분명이 존재한다. 그것은 학살의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서 4.3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뜻을 신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빈 땅>의 좌우에 비행기 사진 두 점을 걸어놓는다. 제주공항의 빈 땅 위로 날아드는 비행기를 담은 사진 <시조새>(2017)이다. 이 사진은 김수열 시인의 <정뜨르비행장>이라는 시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김 시인은 ‘하루에도 수많은 인파가 시조새를 타고 내리는 지금, 저 시커먼 활주로 밑에 수백의 억울한 주검이 있다’고 했다. ‘공항에 착륙할 때마다 발을 드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다‘고 하는 시인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는 정뜨르 발굴 현장의 사진 옆에 시조새 두 마리를 얹어 놓는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사람들이 관광지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몸이 제주에 닿을 때마다, 그 아래 이름 없이 묻힌 수없는 죽음들이 다시 한 번씩 짓눌리고 있다는 이 뼈아픈 서사를 기억하고자 함이다. 
양동규의 땅 이야기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어진다. 억울한 죽음의 상징으로부터 생명의 원천으로서 땅의 의미를 확산하려는 태도이다. 4.3의 원혼이 묻혀있는 땅이라는 비극적 서사의 제주 땅을 생명의 원천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그는 태와 땅을 연결한다. <태 ᄉᆞᆫ 땅>(2018-21) 연작 3점은 ‘태 ᄉᆞ른(사른) 땅은 버리지 않는다’는 제주의 관습을 상기하게 한다. 그는 죽음의 땅 이야기에서 생명의 땅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생각에서 곶자왈 숲의 생명 이미지를 제시한다. ‘태 손 땅’, ‘태를 사른 땅’, 즉 태를 불태운 땅의 이야기이다. 제주에서는 태를 불사르는데, 그 장소를 신성시하는 문화를 생명의 서사로 소환한 것이다. 이 연작은 곶자왈의 이끼류와 고사리 등의 양치류 식물 이미지를 담아 생명의 메시지를 펼친다. 
<미여진 뱅듸의 하늘>(2018) 또한 1미터 길이의 사진 6장을 이어붙인 대작이다. 도두리와 선흘리 유해 발굴 현장에서 돌무더기를 파고 나니 뼈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아이로 추정되는 치아 1개만이 나온 현장, 두개골 흔적만이 남은 장면, 뿌리와 유골이 얽혀 있는 현장에서 그는 70년 시간의 깊이를 절감하며 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에 그는 몇 가지 다른 요소들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끼워 넣는다. 4.3해원상생큰굿 때 담아 놓은 만장 사진들이다. 포커스 아웃 상태로 찍어서 마치 영혼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은 이미지들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듯 발굴을 마무리하고 옮기기 직전의 그날 도두리 하늘을 찍은 구름 낀 하늘이 있다.
이렇듯 기록 사진으로 촬영한 인물이나 사물, 풍경 등을 대형 프린트로 전시장에 제시하는 양동규는 사진이라는 기록물에 담긴 아카이브 요소를 자신의 예술적 메시지로 끌어들이며, 전유의 미학을 구사하는 개념미술가이다. 그가 인물과 사물을 전유하는 방식은 시각언어 고유의 콘텍스트와도 맞닿아있다. 인접과 소격, 조화와 대비, 견제와 균형, 나열과 교차 등 갖가지 요소에 걸쳐있는 그의 이미지 전유는 양동규의 예술을 사진을 넘어선 사진, 다큐를 넘어선 다큐로서 자리매김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기록 사진 작업의 현장에서 예술 작품을 길어올리는 양동규는 문자언어의 서사적 규정을 훌쩍 넘어, 직관적인 상상력이라는 시각언어의 서사구조를 매우 창의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기억투쟁으로서의 풍경
4.3은 70여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그 사건을 직접 체험한 적이 없는 양동규는 4.3의 현장을 찾아 풍경 속에서 역사적 서사를 발굴해내는 간접 체험 기반의 작업을 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에서 당시의 흔적을 찾아 풍경 사진을 통해 그 사건을 반추하는 기억투쟁 작업이다. 양동규는 엄청난 학살을 겪고도 말없이 숨죽여 살아왔던 제주도 사람들의 망각의 세월을 넘어 가리워진 진실을 드러내고 알리는 기억투쟁으로서 제주의 풍경을 담는다. 그것은 잘 알려진 사건의 현장일 수도 있지만, 그저 평범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도 작가 자신의 주관적 심상을 담아 역사적 서사를 창출하는 경우도 있다. <궤-하늘>(2021)과 <궤-땅>(2018)은 다랑쉬굴 주변의 작은 궤(굴)를 포착했다.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투사한 두 개의 시선을 대비한 것이다.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광이 보이는데, 양동규는 그러한 시점의 차이에 따라 탄압과 항쟁, 토벌과 학살, 가해와 피해의 입장이 교차했던 과거를 소환하고 있다. 
다랑쉬마을을 다룬 작업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2018)는 비바람 치는 초겨울에 혼자 답사면서 접한 스산한 마을 느낌을 담은 사진이다. <다랑쉬 마을>(2017-21) 연작은 끔직한 학살의 현장으로 잘 알려진 다랑쉬굴과 그 주변을 포착한 것이다. 35미리 단렌즈로만 촬영하여 사람의 시각과 가장 유사한 화각으로 풍경을 담았다. 두 개의 눈을 가진 인간의 시선과 가장 비슷해서 가장 편안한 풍경을 포착할 수 있는 ‘시점’이 들어있다. 마치 흑백사진 같아 보이는 눈 내리는 장면은 눈과 하늘의 흰색과 숲의 검은 색이 대비를 이룬다. 다랑쉬 주변에 보이는 제주도 특유의 돌무덤과 풀숲과 길 등의 풍경 속에는 어두운 역사의 현장성이 짙게 배어 있다. 평온해 보이는 그 풍경들 속에는 잔혹한 사건들이 스며들어 있다. 양동규는 사건은 지나가고 사물만이 남아 있는 현장에서 삶과 죽음의 교차를 체감하며 4.3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양동규의 풍경사진은 흔적으로서의 풍경이며, 그 흔적을 통하여 기억을 소환하는 기억투쟁이다. 그는 눈 덮인 마을 현장을 찾아 그곳에서 잃어버린 마을의 흔적이 담는다. 눈 내리는 날 들판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을 담은 <정경1-다랑쉬>(2021)이나 얼핏 평범해 보이는 풍경을 담은 <정경2-다랑쉬 대낭밭>(2021)은 마을의 기억을 담은 풍경이다. 제주4.3 이후 무수한 마을들이 사라져버렸다. 돌담만 남아있거나, 동백, 퐁낭(퐁나무), 대낭밭(대나무밭) 등이 그 일부만 남아있는 경우, 거기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0년이 지나서 그 흔적만이 남은 사라진 마을의 적막함을 통하여 양동규는 4.3이 남긴 깊은 상처를 기억하는 상징투쟁을 벌이고 있다. 
영화 “지슬”에서 수십명이 몸을 피해있었던 <동광리 큰넓궤>(2013)는 그 공간과 인물 사진을 교차 배치한 사진이다. 새별오름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들불축제” 이후의 검게 탄 오름을 포착한 사진 <연상>(2016)이나 숲속 이미지에 학살 희생자 사진을 겹쳐 무심한 풍경 위에 어른거리는 학살의 그림자를 담아낸 <겹쳐진 풍경>(2018)도 풍경 사진에서 4.3의 기억을 찾아내는 추체험의 기록이자 예술이다. <미여지뱅듸 묵시록>(2013)은 다랑쉬마을, 다랑쉬굴, 무등이왓, 터진목으로 이어지는 연작인데, 제주도의 전형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한 샤먼의 흔들리는 이미지를 통하여 양동규는 삶과 죽음이 교차한 제주도의 풍경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학살과 저항의 현장 풍경에 담긴 역사성을 재발견하려는 시선의 풍경이다. 
<봄> 또한 가시덤불에서 하늘을 바라본 것인데, 그것은 어느 들판에서 죽어간 이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이거나 토벌대들의 동태를 살피러 나와 망을 보는 이들이 바라본 하늘이다. 이를 통하여 고난과 상처의 이미지를 투영함으로써 같은 하늘이라도 달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침묵하는 빌레못굴>(2017)은 중산간의 곶자왈 풍경이다. 땅 속에서 올라오는 지열로 인해 사시사철 풀이 자라는 특이점을 담아 늘 생명의 기운을 간직한 땅에서 역설적으로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어이없는 현상에 대한 투쟁>(2018) 연작은 “어이없는 진화”라는 책 제목을 따서 붙인 작품명이다. 한라산 풍경과 채석장, 곶자왈의 나무뿌리 등의 풍경을 통하여 생태적 순리를 거스르는 폭력과 함께 경이로운 생명 현장을 보여준다. 
제주의 계곡에 있는 절벽을 ‘엉장’이라고 한다. 엉장은 용암이 흘러내린 현무암 계곡에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다. <엉장>(2020)은 바짝 들이댄 카메라로 사물의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제주 풍경을 바라보며 자라온 양동규는 점점 역사 현장과의 연결을 통하여 새로운 해석을 가하고 있다. 작가의 새로운 해석을 담아가며, 처음 제주 풍경을 찍을 때와 지금의 생각들이 바뀌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 시냇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포착한 사진은 <얽힘>(2017)과 <설킴>(2017)은 꿈틀거리는 형상들 속에 절규하는 존재들이 들어있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저 엉장에서도 숨고, 쫓기고, 피해다니고, 학살당한 현장의 이야기가 서려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양동규는 제주의 산천을 누비고 다닌다. 
양동규는 학살 희생자만이 아니라 산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산전> 연작 3점은 이덕구 산전 주변의 비교적 오래된 나무들을 포착한 것이다. 20대의 청년으로서 4.3항쟁 유격대장을 지낸 이덕구와 항쟁 지도부들이 머물며 활동 근거지로 삼았던 아지트는 ‘산전’이라고 불리는 산속 평지이다. 제주도 예술가들은 이곳을 발굴하여 작품을 설치하고 퍼포먼스를 하며 제의를 펼쳤고, 이후 해마다 이덕구 기일에 산전을 찾는다. 그 산전의 주변에서 양동규는 이덕구와 유격대원들, 산사람들의 활동을 지켜보았을 법한 나이 먹은 나무들을 통하여 비극적 서사의 주인공인 산사람들을 기억하는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 이덕구는 항쟁 지휘부의 책임자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역사는 그를 비극이 아닌 항쟁의 지도부로 기억할 것임을,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를 통하여 묵언하고 있는 것이다. 
조릿대와 길, 풀섶과 길, 무장대와 토벌대가 사용했던 트(비트, 진지, 은신처) 등을 포착한 일견 평범해 보이는 풍경 사진 <선 타기>(2018) 연작도 있다. <시점-덩굴>(2021) 연작은 덩굴들 위나 아래, 또는 그 사이로 어른거리는 잔설을 포착했다. 눈 덮인 돌과 그냥 검은 돌의 대비를 포착한 <숨은 돌>(2021), <검은 돌>(2017)도 마찬가지다. <잔여물>(2021) 연작 3점에서는 눈이 녹으면서 주변 풀 섶이 드러나고 일부 남아있는 눈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이 녹듯 서서히 사라져간 ‘산 사람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늦겨울 살짝 눈이 남아있는 마른 풀 섶을 혼자 답사하는 양동규는 어두운 역사의 흔적을 찾아 추체험을 시도하는 학살 피해 당사자의 손자다. 이렇듯 흔적을 찾아나선 양동규에게 잔설은 사라져간 존재들을 애잔하게 소환하는 사물이다. 사라져가는 눈을 통하여 사라진 것과 남은 것, 망각과 기억 사이를 오고 가는 ‘제주시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 너머의 개념과 역동
멀찍이서 넓게 담아내는 풍경사진들이나 바짝 들이대고 좁게 끌어들이는 현장 사진들 모두 대상을 카메라 렌즈 속으로 끌어들이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끌어들인 대상을 프린트라는 결과로 뽑아낼 때의 편집술과 배치술에 따라 독해의 차별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는 끌어들이는 방법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많지만, 양동규의 사진은 입력이나 출력의 방법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후, 대상물들을 어떻게 편집하고 배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양동규의 경우 사진을 ‘무엇을 찍어서 어떻게 뽑아내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까지 관심을 집중한다는 의미다.
<어느 유격대원의 죽음에 대한 단상>(2017)은 돌무더기 위에서 죽은 유격대원 기록사진 이미지와 자신이 찍은 돌무더기 사진을 병치한다. 기록사진에 적힌 4286년이라는 숫자를 서기로 환산하면 1953년이다. 1954년에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기 1년 전이다. 이름없는 돌무더기 위에서 총을 맞고 죽어간 유격대원의 기록사진을 발견한 양동규는 그것을 자신의 카메라에 다시 담고 그 이미지를 반전시켰다. 그 옆에 자신이 찍은 돌무더기 사진을 나란히 병치했다. 돌맹이들과 아름다운 풀꽃이 고즈넉하게 함께 하는 사진 위에 비극적 서정이 겹친다. 역사적 아카이브 사진과 자신이 찍은 사진을 나란히 걸어둠으로써 양동규는 역사를 반추하는 어법을 직접화법이 아닌 간접화법으로 돌린다. 
역사적 유물로서의 아카이브 사진을 자신의 카메라에 다시 담고 그 이미지를 컴퓨터에서 역전시키는 보정 작업을 함으로써, 그는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를 다루며 카메라와 컴퓨터를 연동하는 동시대 사진가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그것은 사진에 대한 사진으로서 메타사진이다. 자신이 포착한 돌무더기 사진과 유격대원 아카이브 메타사진을 함께 보여줌으로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에서 개념미술가로서의 정체성 전환과 확장을 모색한다. 역사적 사건의 흔적을 담은 풍경 사진은 현장과 1:1로 맞닿는 기록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기록성 안에 정서적 주관을 담아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의 과정에서 예술적 소통이 발생하도록 하는 다양한 조형 어법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양동규는 상호간 연결되거나 대비되는 이미지를 동시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서사를 창출한다. 
여기 또 하나의 병치 기법이 눈에 띈다. <덩굴>(2021)은 나무를 감싸며 타고 올라 그 나무를 잠심해버리는 넝쿨식물 이미지이다. 소리없이 아우성치며 전쟁을 벌이는 식물의 경쟁이 제주의 과거와 현재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대비를 이루는 <백년초>(2017)는 한림 쪽에 분포한 선인장 이미지다. 태평양 건너 멕시코에서 200여년 전에 제주로 건너온 식물들을 양동규는 유심히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그 연원도 모른 체, 해류를 타고 건너온 외래식물을 통하여 멕시코로 이주한 제주 사람들을 기억하는 역사적 성찰의 작품이다. 제주 섬을 넘나드는 이주의 역사는 이렇듯 사람만이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생식물에 덥혀버린 식물이나, 바다를 건너온 식물을 통하여, 양동규는 제국과 식민, 이식과 이주로 점철된 제주의 신산한 삶을 이야기한다.
병치 기법은 풍경 사진만이 아니라 오브제 사진으로도 이어진다. 닭발이라는 사물을 가지고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 작품 <레드컴플렉스의 기원 – 반골, 색출, 학살>(2019)은 같은 소재나 사물이라도 여건에 따라 변화하는 위치나 상황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그것은 하얀 닭발과, 양념이 무쳐진 닭발, 발라먹고 난 후 뼈만 남은 닭발을 가지고 발굴과 색출과 학살의 과정을 거친 4.3의 어두운 역사를 다룬 사진이다. 역사적 사건의 흔적을 찾아 풍경 사진을 찍어온 양동규는 사물을 통하여 상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개념미술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썩은 바나나>(2020)에서도 유사한 방법이 등장한다. 썩은 바나나는 겉은 노랗고 속이 하얀 바나나는 생김새와 달리
자신을 서양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인다.

양동규 사진의 큰 틀이 풍경에서 나온다면, 개념미술적 요소는 그 틀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틀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언급할 지점이 있다. 그것은 양동규 사진에 나타나는 ‘움직임의 문제’이다. 풍경을 담는 사진가들의 공통점은 피사체의 정적인 상태를 카메라에 담는 데 주력하기 마련이다. 양동규의 작품들 다수도 정적인 프레임워크 범주 안에 존재한다. 그런데 다른 한 편 그의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적인 장면보다는 역동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비바람과 눈보라와 같이 동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날을 선택해서 출사하곤 하는 그의 취향은 자신의 예술을 역동적인 에너지로 넘쳐나게 만든다. 그의 예술은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제주의 자연과 더불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의 역동으로 확장한다. 
양동규에게 제주의 자연은 부모님이다. 산이 아버지라면 바다는 어머니다. 산지나 평원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머니 대지’를 이야기 하지만 섬에서 자란 양동규는 ‘어머니 바다’를 이야기한다. 제주 사람 양동규는 한라산과 함께 제주바다를 통하여 역동을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파도 연작이다. 태풍이 몰아칠 때 바닷가에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를 포착하면서, 포말이 바람에 흩날리며 아련히 사라져가는 부분까지 잡아내는 양동규에게 바다와 파도는 거대한 힘과 섬세한 느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는 바위를 내리치는 파도와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을 포착한다. 격하게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찬란하게 펼쳐진 화면에는 ‘바닷물이 파도로, 파도가 포말로’ 변화하는 순간 순간의 역동이 담겨있다. 
<격랑>(2020) 연작은 얼핏 보면 자연현상 기록사진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 것 같지만, 이 사진을 찍은 장소가 구엄리 바닷가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주 본래의 풍경, 본질적인 제주 풍경의 성정을 찾아다닐 때 양동규는 특정한 바위를 발견했다. 이름없는 바위가 있는 이 곳. 염전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관광객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4.3 당시 가장 격렬하게 좌우익이 충돌한 곳이었다는 점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 한 점 한 점으로 사라져가는 포말을 보듯이 역사의 흔적도 사라져간다. 하지만 양동규는 그 사라짐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 예술 공론장에 제시함으로써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현상에서 역사를 소환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미세한 움직임에 주목하는 양동규의 렌즈는 점점 더 정교하게 작동한다. <정방낙화>(2021)는 정방폭포 물의 낙하 지점에서 바위에 부딪히는 포말이 부서지는 장면과 함께 그 포말이 흩어지며 뿌옇게 흐릿해져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흑백 사진이 아닌 천연색 그 자체인데도 강렬한 흑백 이미지 속에서 아련한 깊이를 더해주는 사진이다. 양동규의 카메라는 어느 순간 모래톱을 응시한다. 하얀 모래와 햐얀 꽃들과 하얀 해조류가 넝쿨 숲 사이로 펼쳐진 무심한 풍경이다. 황폐한 상황에서도 그 어느 생명체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모래 위로 한 줄기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한 <모래톱>(2020)은 바람에 흩날리는 미세한 사물의 움직임을 통하여 자연 현상으로부터 배우는 정신성의 세계를 슬쩍 드러낸다. 이렇듯 거대하고도 미세한 움직임에 주목하는 양동규는 자연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숭고미로 연결한다. 
제주시점과 평화예술
양동규가 제시한 ‘제주시점’은 ‘시각(視覺)의 지점’과 ‘시간(時間)의 지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 개념이다. 제주의 눈으로, 제주의 나날들을 성찰하겠다는 뜻이다. 시점이라는 화두를 채택한 양동규 사진의 개념은 사물과 풍경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양동규의 시점은 바라보는 지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풍경의 서정과 역사성, 정치성, 사회성 등을 담는 방법론이다. 그는 ‘학살의 4.3’과 ‘항쟁의 4.3’을 좇아 제주의 산과 들과 계곡과 오름과 마을과 바다를 찾아다녔다. 양동규의 제주시점은 과거의 사건과 상황을 담은 사물이나 풍경을 찾아 그것을 찍음으로서, 자신의 시점을 제주의 시점으로 확장하고, 과거의 시점을 현재의 시점으로 소환한다. 이렇듯 양동규 예술은 보편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확고하게 특수성을 획득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훨씬 상승한다. 그가 카메라에 담아내는 풍경과 사물과 사건들이 제주의 시점에 맞춘 제주특정적 예술이라는 점. 깊이 들여다볼 일이다.
<숨> 연작은 제주 출신의 재일교포 김시종 시인을 만나 인터뷰 하면서 영감을 얻은 작업이다. 양동규는 4.3 당시 말단 남로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오사카로 밀항한 재일교포 시인과 인터뷰를 했다. 바다에 나가서 파도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김연옥 할머니의 증언을 보더라도, 바다는 깊은 회한의 장소이다. 김 시인의 이야기에는 바다와 바람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김 시인은 양동규에게 ‘바람은 바다의 깊은 한 숨에서 나온다’는 문구를 써주었다. 4.3을 직접 격은 활동가의 육성을 통하여 새롭게 추체험을 쌓은 그는 21분짜리 동영상 인터뷰 작업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찍었던 바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태풍이 몰아치는 현장을 찾아가기도 하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양동규는 무심코 봤던 풍경을 점점 더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더 깊이 더 넓게 제주의 풍경에 역사와 현실이 제시하는 정신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양동규는 4.3 희생자와 유족들의 생활공간을 통하여 4.3 희생자들의 삶을 반추한다. <고립된 평안> 연작 23점은 4.3을 겪은 생존희생자들을 방문하여 인터뷰 하면서 그들의 거처를 카메라에 담은 것들이다. 그는 4.3으로 남편을 잃은 자신의 할머니가 지녔던 공간적 아우라를 10여명의 희생자/유가족을 만나면서 다시 접했다. 사진가로서 4.3의 현장에서 일해온 그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은 작품으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인물 다큐 작업을 할 예정인데, 지금까지는 실내공간의 사물들을 통해서 그들의 삶의 간접적으로 성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발표하는 생활공간 사진들은 무심한 듯 예리하게 삶의 흔적들을 포착한 이미지들이다. 
식물학자가 풀꽃을 채집하듯 희생자들의 실내 공간을 카메라에 담은 양동규는 4.3을 겪어낸 사람들의 삶의 편린들을 주섬주섬 담아내는 이미지 수집가이다. 벽면과 천정, 소파, 바닥, 과일, 창문, 이불, 커튼, 옷장 형광등, 거울, 거울에 비친 표구, 손자들의 문구와 종이학, 벽지 등 다양한 이미지들을 담았다. 이러한 섬세한 정서적 연대를 통하여 그는 4.3이라는 사건이 해방정국에서 벌어진 반분단 운동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뿐만 아니라 20세기 중반 한반도 남단의 제주도에서 태어나 한 생을 꾸려온 사람들의 신산하면서도 애잔한 삶의 여정으로서도 존재하고 있음을 성찰하고 있다. 시인 김시종의 시 <아직도 있다면>의 한 구절 ‘아직도 있다면 / 그것은 피로 물든 돌의 침묵’에서 제목을 따온 <돌의 침묵>(2018-21)은 유족들 방에서 찍은 수석 이미지를 종이에 프린트하고, 이를 구겨서 입체 작품으로 세워둔 설치작업이다. ‘침묵하는 돌’ 안에는 증언채록을 통해 채집한 4.3생존희생자 십여 명의 육성이 겹쳐져 알 수 없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어있다. 침묵하는 돌처럼 말없이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정으로 남아있다. 
움직임을 포착하는 양동규의 시점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흩날리는 눈발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캐낸다. <난비하는 지평의 새>(2006-21)는 새들의 군무를 포착한 것이다.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너른 땅 위의 새’를 뜻하는 이 문구도 시인 김시종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것은 까마귀들의 비행이다. 어지러운 혼돈 가운데서도 오와 열이 보이고, 중첩과 여백이 나타나는 까마귀들의 퍼포먼스다. 자연이 연출하는 점들과 그 점들이 선을 만드는 오묘한 순간을 담았다. <제주시청 20170211 - 촛불로 타오르던 혁명의 날>(2017-21)은 나무뿌리가 굽이치는 땅바닥이나 나뭇가지들이 성기게 뻗어나간 허공을 포착했다. 눈이 흩날리며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이던 날. 촛불로 타오르던 혁명의 날을 기념하며 양동규는 70년 전의 4.3을 동시대의 4.3으로 소환한다. 이 작업은 4.3미술에 집중해온 지금까지의 양동규 예술이 동시대의 상황과 사건 속으로 어떻게 스며들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양동규의 시점은 제주시점으로부터 동아시아 평화예술의 시점으로 확장하고 있다. 2019년에 그는 세 개의 섬을 연결하며 평화의 서사를 찾아 나섰다. 오키나와, 타이완을 답사하면서 그는 동북아시아에 드리워진 전쟁과 평화의 양면을 들여다보았다. 제주도 강정은 해군기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국가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경험했다. 게다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전략 요충지로서 잠재적인 전쟁 위협에 노출된 상황이다. 오키나와의 헤노코는 미군의 주둔지로 뒤덮인 오키나와에 새롭게 건설하려고 하는 거대한 해군기지로서 길고 긴 평화운동의 의제 현장이다. 타이완의 킨먼은 중국대륙과 실재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양안의 대립 현장이다. 제주 강정과 오키나와 헤노코, 타이완의 킨먼에서 포착한 섬 사진 연작, <섬섬섬-강정>(2017), <섬섬섬-헤노코>(2019), <섬섬섬-킨먼>(2019)은 동북아시아에서 도드라지게 전쟁의 위협을 안고 있는 ‘섬의 불의 고리’에서 채집한 평화 의제의 작품들이다. 
제주와 함께 평화예술 연대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오키나와와 타이완에 대하는 양동규는 더욱 진지하게 관심을 키우고 있다. 오키나와는 2차 대전의 전쟁 참화가 휩쓸고 갔으며 여전히 전쟁 기지로 고통받고 있다. 타이완은 중국대륙과 동북아시아 해양 체인 사이의 대립 전선의 최첨단에 서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제주도의 역사와 현실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여기에 더해 양동규가 신작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한반도 허리에 있는 DMZ를 다룬 작품들이다. 1948년의 제주도민들이 해방된 조국이 분단국가일 수 없다는 일념으로 분단을 반대하며 4.3항쟁을 벌였듯이, 그들의 후손인 양동규는 분단과 전쟁의 현장인 DMZ를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 섬의 연대와 연결하며 동아시아 평화 담론과 실천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것은 제주의 4.3항쟁을 섬에서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으로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이다. 
행동하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
양동규의 예술은 제주의 땅으로부터 출발하여 4.3의 흔적을 찾아나선 의제특정적 풍경과 그 너머 개념미술적인 요소들과 역동성으로 확장해왔으며, 제주시점을 토대로 평화예술로 확장해오고 있다. 양동규의 사진들은 전형적인 풍경사진의 외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풍경과는 거리가 먼 의제특정적인 풍경이다. 그 의제는 당연히 4.3이라는 항쟁과 학살의 서사이다. 기실 대부분의 제주도를 담은 풍경사진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 특이성 등에 포커스를 맞출 때, 4.3이라는 항쟁과 학살의 정치적 서사를 담은 풍경 사진이 청년작가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양동규의 예술은 비슷한 연배의 사진, 영상 작가들에 비해 차별적인 출발 지점을 가지고 있다. 30대 청년 양동규 시절부터 40대 중반에 이른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향하여 맹렬히 질주한 행동하는 예술의 길이었다. 
한 컷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하는 사진작가들의 일반적인 속성과 달리 양동규는 여러 컷을 섞어 모자이크하기를 좋아하는데, 여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그것을 양동규의 영상 감독 정체성에서 찾고자 한다. 양동규의 초기 작업은 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1978년에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제주도 토박이다. 해양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며, 예술가의 길을 준비했다. 졸업 즈음 시작한 제주참여환경연대 활동은 오늘날의 양동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세상에 눈뜨는 계기를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활동가로서 맞이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불이(不二)의 것으로 바라보며 끊이없이 상호 조응하는 상동성의 맥락에서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관점을 길렀기 때문이다. 
시민운동단체 활동가로서 빡세게 20대 청년기를 보낸 양동규는 이를 통하여 예술가의 길을 걷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양분을 얻었다. 화순항에서 위미항, 강정마을로 이어지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거치는 동안 양동규는 비판과 저항의 행동주의예술가로 성장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그의 주요 역할은 영상과 사진 기록이었다. 그는 이렇듯 초기부터 영상과 사진 매체를 통하여 현장의 활동가로 성장하면서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영상매체 동인 <3 Frame>(2009-2013)을 꾸렸으며, 이후 <EdArt>(2013-)로 독립하여 영상과 사진 매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시민사회 진영의 운동가로 출발해서 영상과 사진 예술가로 연착륙해온 양동규는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실천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사회(적)예술의 실천가이다. 
그가 연출과 촬영, 편집을 맡은 <평화의 설렘으로 한반도를 만나다>(40분, 2006)는 그해 방송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4.3평화공원과 소록도, 5.18광주, 지리산, 새만금, 평택 대추리, 나무의 집, 평화박물관, 강화도 서해접경지역인 교동도에 이르는 대장정 답사를 기록한 것이었다. <섬의 하루>(45분, 2008)는 강정마을 체류 1개월을 담은 작업으로서 그해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영화 <쨈 다큐 강정>(2011)은 8명의 감독이 옴니버스 형태로 10분씩 맡아 DMZ영화제, 부산영화제에 출품했으며, 환경영화제에서 수상했고, 극장 개봉까지 했으며, 교토와 도쿄, 삿뽀로 등의 일본 도시 순회 상영도 했다. 근년에도 제주4.3 70주년 특집 다큐 <4.3과 제주불교, 잊혀진 기억으로 가다>(2018)의 연출을 맡았을 정도로 그는 영상언어와 사진언어를 겸비한 예술가이다.
따라서 양동규 사진을 이해하는 일은 그가 영상언어에 상당히 깊게 들어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들불축제의 폭죽영상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폭파 사운드를 섞은 믹싱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무빙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스틸 이미지 모두에 관심을 가진 공감각적 예술가다. 기실 영상 작업은 사진 이미지의 연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율할 것인가에 그 성패가 달린 작업이다. 양동규는 영상 작업의 몽타주를 고스란히 사진 작업에서도 실현하고 있다. 양동규에게 거의 몸에 붙어있다시피 한 영상 작업은 사진 작업의 입력과 출력, 편집과 배치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한 컷의 이미지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는 여러 이미지를 병치하거나 나열하면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시간 기반의 영상 언어와 공간 기반의 사진 언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양동규 예술은 기억투쟁으로서의 풍경과 개념미술적 요소, 4.3이라는 의제특정성, 그리고 영상언어에 기반을 둔 시각서사 등의 미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서 언급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시민운동단체 활동가 출신의 예술가 양동규에게 들어있는 행동주의예술가(Activist Artist) 정체성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학 졸업과 함께 시민운동에 뛰어든 그는 그 이후에도 제주민예총 사무처장(2014-2019)을 맡아서 30대 후반 5년간을 예술인단체 활동가로 일했다. <4.3문화예술축전>, <해원상생굿>, <탐라국입춘굿>, <제주프린지페스티벌>, <예술로 제주탐닉> 등 다양한 프로젝트의 조직운영과 기획 및 실행 실무 책임자로서 그는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러한 이력은 그의 활동을 사진 이미지 제작자로 제한하지 않고,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활동과 향유를 구성하고 조직하는 일들과도 연결된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예술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의 관점에서 보면 비논리적인 말이다. 예술가는 작품으로만 말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예술가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말하곤 하지만, 예술가는 결코 작품과 등치하지 않는다. 삶의 격랑 속에서 작품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나온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이란 오히려 예술가의 삶의 한 부분이다. 예술노동이 예술체제 그 자체의 자족적인 영역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일반적인 믿음을 깨고, 양동규는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 그리고 프린트 등의 활동을 자신의 작업과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최근까지 예술인단체 활동을 해온 그는 예술과 활동을 병행하며 양자 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장의 활동가가 예술적 표현으로 자신의 활동지평을 넓혀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행동주의예술이라고 부른다. 양동규의 출발은 시민운동단체 활동가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는 늘 현장에 서 있는 예술가다. 그는 현장으로부터 예술을 길어 올린다. 다수의 제주도민이 그러하듯이 양동규도 4.3희생자의 유족으로서 자신의 문제에 뿌리를 두고 4.3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양동규 예술의 기억투쟁과 개념미술, 4.3의제, 시각서사 등의 요소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행동하는 예술가 정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전업작가 이데올로기에 함몰하지 않고,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적 삶의 과정에서 예술을 길어 올리는 것이 양동규 예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4.3을 반란과 토벌로 인한 학살 사건이 아닌 반분단 항쟁의 역사로 정명하는 시간을 향하여, 나아가 제주의 서사가 한반도와 오키나와와 타이완과 동아시아의 평화예술로 확장하는 미래를 향하여 양동규의 예술은 끝나지 않은 항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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